오늘의 여행
술 마시고 뻗은 사이 사라진 핸드폰
시베리아 벌판 멍때리기
OOO OOO으로 해장
기차 화장실 등 시설 파악
옴니버스식 사람 구경하기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2일 차
숙취 속에서 잠을 깼다.
완전히 술과 잠에 곯아떨어져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자는 사이 아저씨와 친구들,
그리고 할아버지도 모두 내렸다.
그리고 내 폰도 하차했다.
시베리아 도둑놈을 잡아라!
사람이 줄어들자
기차가 조금 조용해졌다.
덜컹이는 창 밖 겨울 벌판도
차분히 이어진다.
어제까지의 풍경은
우리의 겨울 숲과 닮았었지만,
어느새 이국적인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해장을 해야겠다.
일주일을 기차에만 있어야 하니
전투식량을 잔뜩 챙겨 왔는데
기차 안에서도, 역에서도
먹거리를 팔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우리나라의 컵라면 '도시락'이
인기라는 말을 익히 들어봤지만
실제로 와보니 그렇지 않다.
인기 정도가 아니라
시장 장악 수준이니까.
당연하다는 듯 거의 모든 사람들이
팔도 도시락을 먹는다.
제품엔 키릴 문자로 선명하게
'도시락(Доширак)'이라 쓰여 있다.
차장실 앞 온수기를
상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컵라면이나 전투식량을 먹기에 편했다.



어제부터 오늘 밤까지는
러시아와 중국 국경을 따라 이동한다.
어제는 우수리 강을 따라 북상했고
하바롭스크부터는 서쪽을 향해
아무르 강을 거슬러 간다.
오늘 밤 모고차를 지나면
비로소 아무르 강과 이별하고
중국 국경에서도 멀어진다.
진정한 겨울왕국,
시베리아로 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천 km,
가장 가까운 오호츠크 해에서도
500km 이상 떨어진 이곳은
이미 시베리아만큼 춥다.
밖이 얼마나 추운지
여닫을 수 없는 창 내측에
얼음이 얼었다.

왁자지껄했던 지난밤과 달리
한가로운 하루를 보냈다.
자주 정차한 어제에 비해
오늘 경유한 역은 절반 가량,
경유 시간도 2분 정도로 짧아서
열차 내에서 휴식하고
책도 조금씩 보고
멍하니 창 밖을 보니 저녁이다.
전체가 트인 열차에 있고
수많은 승객이 있다 보니
누가 뭘 하든 강제 공개이다.
우리 자리가 출입문에서 가장 먼 안쪽
화장실에서 둘째 칸이라,
차장실 앞 온수기를 가거나
정차 시에 바람을 쐬고 오려면
거의 모든 칸을 지나쳐야 한다.
그때마다 각 칸에서 펼쳐지는
옴니버스 구성의 인생극을 보게 된다.
어제 너무 신나게 놀아서인지
조용히 넘어가는 오늘이 심심하다.
그나저나 머리가 감고 싶다.
화장실은 두 개가 있는데,
각 좌변기 하나와 세면대 하나가 있다.

여행 준비과정에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관리가 잘 되어 깨끗했다.
다만 버튼식으로 된 수전에서
물이 너무나 조금씩만 나오는 바람에
도저히 머리를 감을 수가 없다.
내일은 생수를 사서 마시고
빈 통에 물을 받아 모아
머리 감기를 시도해 봐야겠다.
결국 세수만 하고 나오는데,
남자애들이
중간 칸에 있는 소녀 둘에게
관심을 표현하느라
화장실을 가든 쓰레기를 버리러 가든
그야말로 '졸졸' 쫓아다닌다.
그 모습이 강아지들 같아서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낮에 열심히 뜨개질을 하시던
옆 칸 할머니들은
일찍 주무시고 계신다.
평화로운 이 기차에서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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